chatGPT가 블로그 글을 쓰는 것을 처음 본 날, 그 능력이 너무나 기묘하고 기가 막혀서 밤을 세워 chatGPT와 대화를 하고 놀았습니다. 그러기를 2주 정도, 그 때의 놀라움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고, 시들해져버렸습니다. AI가 쓴 글은 절대로 가슴 설레게 하거나 즐겁게 하거나 슬프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이 글은 형식을 갖추지 않고 자동기술법으로 주절 거리겠습니다. 브레인스토밍이라서…
공감이 없는 창작
18세기 어느 화가가 왜 그림을 그리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위해서 나는 그림을 그린다.’라고 말했던 일화가 있습니다. 내 그림을 보는 관객이 그 어떤 희노애락도 느낄 수 없다면, 그림은 그려서 뭐하겠습니까?
어린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부모가 애정을 가지고 봐주면서, 그림에 대해 많은 것들을 물어봅니다. 부모의 관심을 확인한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겠지요. 아이의 그림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성이 만들어내는 예술입니다.
사회성이나 관계성 속에서만이 예술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내 그림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있고, 공감대를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내 그림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창작 활동의 핵심인 공감이 AI에게는 없습니다.
오감 능력
AI는 기술적으로 온도를 알고, 언어적으로 묘사된 형태를 기억하고, 수치로 표현된 소리 데이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AI는 데이타 덩어리일 뿐입니다.
우리는 오감 때문에 고통, 분노, 혐오 등 온갖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 감정으로 인해 욕망하게 되며, 욕망으로 인해 행동하게 됩니다. 우리는 생명을 유지해가는 본성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감에 관한 언어를 많이 구사합니다.
‘그는 그녀를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은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했습니다.’ 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여기서 ‘뜨거운’ 이라는 말은 온도가 높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쓸 수없을 겁니다.
아마 구글 알고리즘이 이런 오감에 관한 언어를 가려내는 논리가 들어가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지금까지 2~3주 밤낮없이 AI와 대화하면서 한 번도 오감에 관한 어휘를 쓰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말줄임표
‘예전에 이랬었는데…’라고 말 속에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들어있습니다. 단순히 문자로 옮길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아련히 그려지는 그런 기억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유한한 삶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도 들어있을 수 있겠죠. ‘…’이라는 말 줄임표 속에 우리는 그런 감정을 담습니다.
그동안 AI와 대화 속에서 말줄임표를 본 적이 없습니다. AI도 과거를 말할 수 있고 미래 예측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지만, AI의 말 속에는 어떤 그리움, 후회, 아쉬움, 설렘 등 그 어떤 인간의 감정이 녹아있지 않기 때문에, 말줄임표를 쓰지 않습니다.
말줄임표는 다른 말로하면 논리적 이탈현상입니다. 언어가 끊어지지 말아야할 곳에서 끊어져버리는 거죠.쉬지말아야 할 곳에서 쉬는 인간을 AI는 이해할 수 있을까요? 구글은 이런 논리적 이탈을 알고리즘 속에 넣어서 AI글쓰기와 인간의 글쓰기를 구분할 것 같습니다.
공허한 반복
chatGPT 와의 대화에서 느낀 또 한가지는 공허한 반복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겁니다. 인간이라면 잘 모르는 질문을 받으면 간단하게 답하고 대화의 소재를 전환하겠지만, AI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억지로 만들어냅니다. 데이타가 없으면 똑같은 짧은 정보를 가지고 서론 본론 결론을 구성해버립니다. 구글은 비슷한 어휘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글을 AI 작성글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글 속에 내재된 불규칙성
글을 계속 쓰다가 보니까 저는 지금 지쳐갑니다. 밤을 세우고 새벽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적는 중이라서, 졸리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처음에는 자세히 적다가 점점 요점만 적고 싶어집니다. 인간이 작성한 글은 단락 별로 사용되는 단어의 수가 들쑥날쑥합니다. 내가 강한 인상을 받았던 부분을 이야기 할 때는 한 단락이 훨씬 길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는 짧아지겠죠. 동물이 쓴 글이기 때문에 불규칙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AI가 쓴 글은 서론, 본론, 결론에 사용되는 단어의 수가 상당히 일정한 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론에서 300단어 사용했으니까 본론은 800단어정도로 하고 결론은 200 단어정도로 적는 씩입니다. 단락 별 단어수도 거의 비슷비슷한 길이를 유지합니다. 기계니까 기계처럼 써내려가는 거죠.
구글은 이렇게 인간만이 가질 법한 불규칙성을 파악하여 AI 글쓰기를 가려낼지도 모릅니다.
독자들의 참여도
인간의 창작은 관계성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AI는 그런 관계성을 내포한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독자들도 AI의 글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사실, 한 단락만 읽어보아도 뭔가 AI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AI와 공감하고 싶어하는 독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그냥 읽다가 나가버리겠지요.
아마도 독자들이 글을 읽어러 들어와서 머무르는 시간이 구글에게는 중요한 키가 되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맺음말
오늘은 그냥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인간적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AI 라는 여전히 놀라운 도구를 사용해서 창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어지럽힙니다. 그렇지만, 정말 졸려서, 더는 못쓰겠습니다. 저는 인간이니까요. 이렇게 불규칙하게 뜬금없이 그냥 글을 마감해버리려고 합니다. 아~ 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