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우리는 졸로를 떠났고, 숨 막히는 열대의 밤 내내 네그로스호는 절반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뾰족한 뱃머리는 대운하를 유유히 지나가는 곤돌라처럼 수수하게 술루해의 잔잔한 물결을 가르며 나아갔다. 밤에 너무 더워 잠을 잘 수 없어서, 가판대의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열대 지방의 신비로운 냄새가 가득한 더운 육지 바람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때렸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뱃머리에서 휘어 나오는 인광성 물결을 바라보았다. 뒤편 어두운 해도실에서 필리핀인 항해사보가 조명된 나침반의 바늘 방향에 따라 수시로 키를 부드럽게 돌리고 있었다. 바다가 너무 잔잔해서 우리의 앞돛대는 별들 사이에서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굴뚝에서 나온 연기는 마치 잉크로 담근 붓으로 그린 듯한 보랏빛 하늘을 가로질러 길게 이어졌다.
얼마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 몽상에 잠겼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마 몇 시간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선실의 종이 또렷하고 예리하게 울리는 소리에 깨어났고, 잠시 후 아래 갑판에서 울리는 여덟 번의 약한 종소리가 이를 따라했다. 곧이어 발바닥이 맨 바닥을 쿵쿵거리며 걷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는 교대의 신호였다. 뱃머리에서 어둠 속으로 꾸준히 나아가던 그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날카롭게 그어진, 마치 빛나는 은색 철사처럼 보이는 가느다란 빛줄기가 보였다. 그 순간 이 좁은 빛의 틈새는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넓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빨라져 한순간에 새벽이 되었다. 마치 창문 커튼이 열리듯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어둠의 장막이 걷히는 듯했다. 언덕에서 해 뜰 무렵 도시의 불빛이 꺼지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것처럼, 하나씩 별들이 사라졌다. 화가 난 구름 덩어리들이 암울한 하늘을 배경으로 환상적인 형태로 솟아올랐다. 더운 육지 바람이 차가운 바람으로 변하면서 나는 오싹해졌다. 갑자기 지평선 너머에서 수백 개의 불타는 창들이 떠오르며 구름 장벽을 뚫고 지나갔다. 그들의 맹렬한 공격 앞에 위협적이던 구름 벽은 무너지고, 사라지고, 급격히 떨어져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 태양은 적도 근처에서 보여주는 그 뻔뻔스러운 태도로 전진했다. 이제 하늘은 흠잡을 데 없는 푸른 도자기로 뒤집힌 거대한 그릇처럼 보였고, 술루해의 표면은 수백만 개의 다이아몬드가 뿌려진 것처럼 반짝였다. 우리 뱃머리에서 한 해리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정글로 덮인 보르네오의 해안이 떠올랐다.
세상의 가장자리에 흩어져 있는 몇몇 장소들은 젊은이들에게 나팔 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그들은 로맨스와 대모험의 암호이다. 그들의 이름만으로도 젊은이들의 발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이상한 길들이 내려가는 곳을 표시한다. 그 중에서도 내 소년 시절 상상력을 완벽히 사로잡은 것은 보르네오였다. 미국 소년들에게 오락을 제공한 피니어스 T. 바넘이 알려준, 야생인이 사는 것으로 소문난 그곳이었다. 나는 매리엇의 숨막히는 페이지를 통해 정글에서 머리 사냥꾼과 싸우고, 보아뱀과 오랑우탄을 추격했다. 그래서 네그로스호의 다리 위에서 새벽에 서서 내가 상상 속에서 그려본 신비한 섬이 사파이어 바다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것을 쌍안경으로 지켜보았을 때, 소년 시절의 꿈이 실현된 것이었다.